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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론을 떠나라 (계 18:1-8) 김영균 202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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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계시록18:1-8절 개역개정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말미암아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인들도 그 사치의 세력으로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의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그가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얼마나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통과 애통함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라

제공: 대한성서공회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큰 음성으로 외쳤습니다(1). 그 외친 내용은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2)’라는 것입니다. ‘큰 음성으로 외쳤다’는 표현은 ‘분명하고 확실함’을 뜻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이 기록되던 때에는 ‘바벨론’이란 나라는 없어진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큰 성 바벨론’이란 ‘거대한 이 세상’이란 뜻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몇 가지 교훈을 받습니다.


누리며 살아야 하는것입니다
~ 사람들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유하려는 사람과 누리는 사람입니다. 물론 규모는 다 다르겠지만 둘 중 하나에 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바벨론’이 무너지듯, 언젠가는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그 무너져 버릴 것에 대한 집착입니다. 닳거나, 고장나거나, 불에 타 버리거나, 싫증나게 되어 버려지거나 할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소유욕은 멈출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 중 하나가 누릴줄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도 누릴줄 아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주신 최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큰 성 바벨론’이 무너지게 되니 ‘귀신의 처서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일뿐(2)’이었습니다.

경고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다른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은 재앙들을 받지 말라(4)’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얼마나 다행스럽습니까. 그 소리를 듣고 피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경고의 음성을 외치십니다. 성경에서 그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읽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으면 읽어도 소용없습니다. 꾸준히 읽어야 들려 옵니다. 그리고 순종해야 유익합니다.

은혜에 감사합시다
~ 바벨론이 행한 일들이 하늘에 사무쳤고, 그의 불의한 일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십니다(5). 그래서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사실 이런 법칙이 공의이고 정의일 것입니다. 하지만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행한 죄가 무엇이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모든 죄의 값을 치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은 ‘주신 은혜,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의 삶이어야 합니다.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면 교만함으로 살며, 착각하며 살게 됩니다. ‘나는 여왕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함을 당하지 아니하리라(7)’고 하며 삽니다. 하지만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게 되는데 곧 사망과 애통함과 흉년(8)’입니다.

잃음으로 충격을 받은 경험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작은 일이었습니다. 아마 누구나 그런 경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내 손을 떠나가 버렸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되었구나’라며 정리합니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아쉽게 여기는 때’도 있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 소유하려는 욕심을 정리해야 합니다. 잘 산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충분히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경고하심으로 삶을 인도받으면서 ‘누리는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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