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돌아오라 (슥 1:1-6) | 김영균 | 2025-08-0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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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스가랴1:1-6절 개역개정1. 다리오 왕 제이년 여덟째 달에 여호와의 말씀이 잇도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선지자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여호와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였느니라 3.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말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고 내게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 너희 조상들이 어디 있느냐 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6. 내가 나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한 내 말과 내 법도들이 어찌 너희 조상들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 하였느니라 하나님과 교회와 가정과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등을 돌아오면 불필요했던 삶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없어도 될 것들은 등골을 휘게만 할 뿐 무익합니다. 오늘은 <스가랴>를 묵상합니다. 나그네로 이방에서 살다가 자기 땅으로 돌아온 것 자체도 흥분스러울 정도로 대단한 기적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돌아온 목적은 성전을 건축하기 위함이었지만 주저주저하다보니 순식간에 이십 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런 때에 하나님은 스가랴를 선지자로 세우시며 말씀을 주셨습니다. 본문을 통해서 그 말씀을 주신 목적들을 묵상합니다.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26:41)'라면서 제자들을 격려하신 분은 주님이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용기'였습니다. 시험을 이길 만큼의 '용기'가 없었던 것입니다. 돌아온 이스라엘이 그러했습니다. 환경을 보니 극복하기 힘들다고 판단했고, 자기 자신들의 역량을 보니 성전을 건축할 자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그들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스가랴 선지자를 일으켰던 것입니다. 용기를 잃어버린 현상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이 돌이켜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 길대로, 우리 행위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 우리에게 행하셨도다(6)'.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져서 감사하다는 뜻이 아니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도 할 수 없어.....하나님의 뜻이 그런건데....어쩌겠어'라는 용기를 잃어버린 체념한 모습입니다. 사명을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심히 진노하셨다(2)', '너희 조상들을 본 받지 말라(4)'라고 말씀하신 목적은....싸우라는 뜻이 아닙니다. '너희는 제발 본이 되라'는 뜻입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빚을 갚아야 할 심정'으로 '본이 되라'는 격려로 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들(살전1:3)'이 소문이 났던 것을 보면, 바른 믿음은 다른 이에게 믿음의 길잡이가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믿음과 사랑과 헌신과 겸손과 행복함으로의 삶은 다른 이에게 본이 될 수 있습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움이고 상식입니다. '너희 조상들을 본 받지 말라(4)'는 말씀은 '무시하라, 관계를 끊어라'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네 부모를 존경하라 그것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길(엡6:2,3)'인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하고 변함없는 약속입니다. 부모와 조상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은 잃어서도 안되고 잊어서도 안됩니다. 답습하기보다는 악한 길, 악한 행위들에서는 돌아설 수 있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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